말끝마다 붙이는 접미사같이, 현재는 이미 더이상 21세기의 초입이 아니다. 2010년이 되었고, 20세기의 영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혹은 그래야한다, 그럴것이다 라는 어투로 자주 이야기한다.)
2010년의 여름을 예상에 없던 유럽에서 이주넘게 보내고 있다. 유럽에 와본것이 여러 번 되기는 하는데, 프랑스나 영국 혹은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들을 중심으로 가보터라, 동유럽은 처음. 현재는 월소(=바르샤바)에 와있다. 지난 주부터 이 곳에서 해야하는 일들과 더불어 하는 일이 길거리와 박물관들을 돌아다니면서 제2차세계대전에 대한 공부를는 것. 그렇게 큰 일을 겪고 난 후의 인류는 많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지만, 나같은 이는 제2차세계대전을 겪은 부모와 살면서도 막상은 아는 듯 모르는 듯 듣고 싶지않은 전쟁이야기, 지나간 과거이야기였다. 현재 읽고 있는 여러 권의 책들과 또 사고 있는 책들은 거의가 20세기 문화와 역사사조에 대한 이야기이고, 21세기이긴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영향에서 벗어날 준비가 되있는 것 같지는 않다. 길거리에 남겨져있는 수많은 기억의 파편들은 마뉴먼이나 비석으로 남아있지만, 그렇게 수많은 사연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이곳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 남겨진 것들과 마주치지 않는 일상이란 성립되지도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죽음이나 과거가 더이상 무섭거나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까.

며칠간 베를린에 다녀왔는데, (근래 베를린은 나의 로망이었다, 요즘들어 가장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도시인데다 문화와 예술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뛰어난 행보를 보이고 있기도 했고, 뉴욕이 아니라면 베를린에가서 예술가 하고 싶다는 것이 나의 입에 붙은.) 흥미로운 도시임에는 분명했다. 서쪽이 가지고 있었던 자본주의의 화려함이나 안정감이 그대로, 동쪽이 가지고 있었던 공업화와 인간존재에 대한 무거움도 느끼기에는 충분했던 시간. 내가 머물렀던 곳은 동베를린에 해당하는 곳이었고, 막스알리와 가까운 곳이었다. 이곳이 마치 뉴욕의 이스트빌리지나 브룩클린 윌리엄스버그처럼, 서울의 홍대와 같이 비급문화들과 젊은이들의 암울함과 활달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 밤이 되면 지하철역에서 기타치고 노래부르는 허름한 미쿡인이나 모합이나 피얼싱퍼레이드의 바디를 가진 독일어사투리억양의 젊은이들이 술병을 끼고 노는 곳. 암울하지만 이러한 곳이 인간의 존재에 더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